... 마고에 딸들1
본문 바로가기
감성에세이&루담의기록/감성 판타지소설,

마고에 딸들1

by midaswiz 2025. 7. 8.

1화: 돌이 무너진 날



아침 다섯 시, 루담은 어김없이 눈을 떴다. 

창밖으로 스며드는 새벽 공기는 차갑고 맑았다. 산골 마을의 아침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새들의 지저귐, 멀리서 들려오는 닭 우는 소리, 그리고 계곡물이 흘러가는 소리. 루담에게는 익숙한 교향곡이었다.

"또 그 꿈이구나."

루담은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훔쳤다. 며칠 전부터 같은 꿈을 꾸고 있었다. 하얀 한복을 입은 여인이 돌을 하나씩 쌓아 올리는 꿈. 여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손은 놀랍도록 아름다웠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항상 같은 말을 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루담은 고개를 저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꿈 따위에 신경 쓸 시간은 없었다. 식당을 열 준비를 해야 했으니까.

'산골메밀'이라는 간판을 단 작은 식당이 루담의 전부였다.8년 전 도시에서 내려와 문을 연 이후, 이 작은 가게는 마을 사람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특히 루담이 직접 뽑은 메밀국수는 근처에서 소문이 자자했다.

"루담아!"

식당 문을 여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심애 할매였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정정한 할매는 매일 아침 첫 손님이었다.

"할매, 일찍 오셨네요. 메밀국수 한 그릇이죠?"

"그래, 그런데…" 심애 할매의 얼굴에는 평소와 다른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루담아, 넌 어젯밤에 이상한 꿈 안 꿨니?"

루담의 손이 잠시 멈췄다. "꿈이요?"

"돌 쌓는 여인 말이야. 하얀 옷을 입고서 돌을 하나씩 하나씩…"

젓가락을 떨어뜨릴 뻔했다. 루담은 심애 할매를 똑바로 쳐다봤다.

"할매도 그 꿈을 꾸셨어요?"

"나뿐만이 아니야. 어젯밤 마을회관에서 사람들끼리 이야기하다 보니까, 절반 이상이 그 꿈을 꿨더구나. 다들 말하길, 여인이 돌을 쌓다가 갑자기 무너뜨리더래. 그리고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죠?"

심애 할매의 눈이 커졌다. "너도 들었구나."

루담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이상했다. 같은 꿈을 꾸는 사람이 이렇게 많을 리가 없었다.

"할매, 혹시 그 여인이 누군지 아세요?"

"글쎄…" 심애 할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옛날 우리 어머니한테 들은 이야기가 있긴 한데. 이 산에 마고 할머니가 살았다고 하더구나. 산과 마을을 지키는 여신 같은 분이었다는데…"

그때였다. 뒷문 쪽에서 뭔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루담은 후다닥 창고 쪽으로 달려갔다. 창고 뒤편, 평소에는 잡초만 무성했던 곳에 작은 돌무더기가 무너져 있었다. 그런데 그 사이로 뭔가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이게 뭐지?"

손바닥만 한 크기의 돌 조각이었다. 표면에는 루담이 본 적 없는 기이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원과 선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모양이었는데, 보고 있으니 어지러울 정도였다.

그런데 돌을 집어 드는 순간이었다.

*윙—*

귓가에 바람 소리 같은 것이 울렸다. 아니, 바람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목소리였다. 아득히 먼 곳에서 들려오는 듯한, 그러면서도 또렷한 여인의 목소리.

*"드디어 찾았구나."*

루담은 깜짝 놀라 돌 조각을 떨어뜨렸다. 돌은 마른 땅에 떨어져 둔탁한 소리를 냈다. 하지만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서둘러야 한다."*

이번에는 확실했다. 꿈에서 들었던 그 목소리였다. 돌 쌓는 여인의 목소리.

루담은 떨리는 손으로 돌 조각을 다시 집어 들었다. 문양들이 희미하게 빛나는 것 같았다.

"루담아! 괜찮니?"

뒤에서 심애 할매가 걱정스럽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루담은 돌 조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뭔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평범했던 일상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마고의 후계자여, 깨어나라."*

---

그날 밤, 마을 곳곳에서 사람들이 잠결에 중얼거렸다.

"돌이 무너졌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고 산 깊은 곳에서는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감성에세이&루담의기록 > 감성 판타지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고에 딸들 5  (3) 2025.07.09
마고에 딸들4  (2) 2025.07.08
마고의딸들3  (1) 2025.07.08
마고에 딸들2  (3) 2025.07.08
지리산 산골에서 시작된 신의 이야기 –  (0) 2025.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