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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에세이&루담의기록/감성에세이

혼자 말하고, 혼자 듣는 날들

by midaswiz 2025. 6. 27.

혼자 말하고, 혼자 듣는 날들

가끔은 그런 날이 있다.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데, 속으로는 말을 너무 많이 하고 있는 날.

"괜찮다고 했잖아" "왜 아직도 그걸 생각해?" "그때 그냥 말했으면 됐는데…"

머릿속은 수다스럽고, 마음은 조용하다. 누가 들어주는 것도 아닌데, 나는 나에게 계속 말을 건넨다. 혼자 말하고, 혼자 듣고, 혼자 감당한다.

이상하게도, 그 시간이 지나면 조금은 정리가 된다. 누가 내 이야기를 받아준 것도 아닌데, 스스로가 스스로를 조금씩 위로하고 있었던 거다.

가장 솔직한 대화

혼잣말을 하는 순간, 우리는 가장 솔직해진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도 없고, 예의나 격식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 그저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말들을 그대로 내뱉으면 된다.

"아, 정말 짜증나네" "왜 그렇게 했을까?" "그냥 포기하고 싶어"

이런 말들은 다른 사람 앞에서는 좀처럼 하기 어렵다. 부정적으로 보일까 봐, 약해 보일까 봐 걱정되니까. 하지만 혼잣말 속에서는 그런 걱정이 없다.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니까.

머릿속 수다쟁이와 마음속 청취자

신기한 건, 혼잣말을 할 때 나 안에 두 명의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떠들어대는 '머릿속 수다쟁이'와 묵묵히 들어주는 '마음속 청취자'.

수다쟁이는 오늘 있었던 일들을 늘어놓고, 고민을 털어놓고, 불평도 하고, 계획도 세운다. 청취자는 그걸 다 들어주면서 조용히 정리해준다. 때로는 "그래, 너 정말 힘들었구나"라고 위로해주기도 하고.

혼자만의 치유 시간

혼잣말은 일종의 셀프 상담이다. 전문가에게 받는 상담만큼 체계적이지는 않지만, 나름의 치유 효과가 있다.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순간, 그 생각은 좀 더 구체적인 형태를 갖게 된다. 막연히 답답했던 감정이 "아, 내가 지금 외로워하고 있구나" "내가 인정받고 싶어하는구나"라는 명확한 인식으로 바뀐다.

그리고 그 인식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뭔가 모를 것에 억눌려 있다가, 그 정체를 알게 되면 조금 숨이 트이는 것처럼.

판단 없는 공간

혼잣말의 가장 큰 장점은 판단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그런 생각은 좀 그렇지 않아?" "너무 부정적이야"라는 반응이 돌아올 수 있다. 물론 그런 피드백이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때로는 그냥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혼잣말 속에서는 어떤 생각이든 괜찮다. 유치한 생각도, 이기적인 생각도, 그냥 내 생각이니까. 그 안전한 공간에서 마음껏 표현하고 나면, 정작 중요한 건 무엇이고 버려도 될 건 무엇인지 스스로 구분할 수 있게 된다.

혼자서도 충분한 날들

모든 감정을 누군가와 나누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질 필요는 없다. 때로는 혼자서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들이 있다. 나를 위로하는 것도, 나를 격려하는 것도, 나를 이해하는 것도.

물론 사람들과의 대화도 소중하다. 다른 관점을 듣고, 공감을 나누고, 함께 해결책을 찾는 과정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전에,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스스로 정리하고 받아들이는 시간도 필요하다.

오늘의 혼잣말

오늘도 나는 혼자 중얼거린다. 커피를 마시며 "아, 이 맛이야",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에이, 짜증나",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오, 이거 괜찮은데?".

그리고 하루가 끝나갈 때쯤 혼자 웃는다. 나와 나의 대화가 꽤 재미있었다고, 오늘도 나는 나를 잘 달래주었다고.

혼잣말은 혼자라는 뜻이 아니다. 가장 가까운 친구와 함께 있다는 뜻이다. 그 친구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만 다를 뿐.

혼자 말하고, 혼자 듣는 시간이 필요한 날이 있다. 그리고 그런 날이 있다는 것은 자연스럽고 건강한 일이다.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그것도 나를 돌보는 방법 중 하나니까.